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그런 구성이기 때문에 시민에게 개방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지만 항상 정치적 시위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앙 집중식 공간은 거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 전체적인 공간의 속도를 낮추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43; 13-15, 17-19)

 사실 우리 국민들에게 광화문 광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다른 나라의 광장들과는 달리 교통 체증, 의경, 시위, 세종대왕상 같이 '광장'이라는 타이틀에 그리 적합하지 않을 이미지만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까지 광화문 광장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왜 타국 광장에 비해 걷고 싶지 않은 광장일까? 공간의 속도로 일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말하는 대로 만약 광화문 앞에 노천 카페가 많이 생긴다면,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가로수를 심는다면, 대형 건물의 입구를 늘린다면 그 후의 일은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모텔의 창문만 크게 바꾸어서 호텔로 리모델링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듯 같은 빌딩이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모텔이 되기도 하고 호텔이 되기도 한다. 창문은 건축물의 기능과 사회적·심리적인 요구에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조절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p.89; 17-21)

 공간의 성격이 개방적인지 또는 폐쇄적인지에 따라 창문이 달라지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꼭 모텔이 아니라 평범한 건물을 리모델링함에 있어서도 창문 크기를 바꿈으로써 밝은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일광의 밀도가 이미지에 중요함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문단이다.


필자는 주택을 디자인할 때 건축주에게 항상 경사진 천장과 복층 공간을 넣으라고 권한다. 이런 공간은 단순 면적 방식으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면적만으로 계산하는 '평당 공사비'는 항상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권하는 것은 분명히 더 좋은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정확하게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을 평가하려면 우리가 사는 집들도 이제 체적으로 계산해서 팔아야 한다. (p.93; 9-13, 16-18)

 주택은 평당 공사비와 상관없이 거주자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 마련되어야 한다. 복층 공간이나 적당히 높은 천장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고, 주택이 왜 아파트보다 넓어 보이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는 건축 기술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남대문이 오래 묵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 조선인이 디자인하고 당대 최고 구축 기술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로서의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건축 문화재이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이 만리장성이 진시황제가 만들었다고 배웠지만, 실은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도자기 수출한 돈으로 개축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랑캐를 막기 위해서 장성을 만든 개념이 진시황제 때 만들어진 것이고 그 개념이 문화재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건축은 오브제의 성격이 강한 도자기나 그림과는 다르다. (p.116; 3-12)

 나 또한 어릴 적 숭례문이 불탔다는 뉴스를 보고선, '국보 1호가 영영 사라졌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TV로 문화재가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슬픔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문화재들을 하드웨어로만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리장성의 예는 우리의 관념을 탈피해야 한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수라간에 레스토랑이 있고 경복궁이 박물관으로 사용되면 안 되는 걸까? (p.118; 15-17)

 이 경우는 위의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을 오브제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작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하지만 건축물이란 본디 시대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그렇게 흘러감에 따라 본연의 멋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 예전 쓰임처럼 요새로만 남아 있었다면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수라간에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적극적인 접근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근대에 와서는 반대로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가까운 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반영한 교회가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롱샹 성당'이다. 이 성당은 제단이 있는 쪽이 사다리꼴의 넓은 변 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신자가 제단을 바라볼 때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게 디자인되어 있다. (p.177; 9-14)

 공간에 따라 위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각종 선거 후보들이 롱샹 성당과 같은 곳에서 유세를 한다면 더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강 고수부지처럼 24시간 사용 가능한 수변에 위치한 도심 공원은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p.202; 6-7)

 외국에 다녀와본 대부분의 독자라면, 야간에 공원을 이용하는 것이 그리 안전한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한강 고수부지는 강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상위권인 야간 치안 상태를 바탕으로 통행 밀도가 매우 높은 도로들을 접하고 있어 안전하고 편리한 공원이다. 앞으로의 강남 개발은 공원과 도심을 이어줄 수 있는 '도시 재생'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망 좋은 한강변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어렵지만, 고수부지 주차장에만 가면 강변 전망의 방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자동차이다. 자동차 공간을 더 프라이빗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짙은 썬팅 필름지를 붙이기도 한다. 썬팅지는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밖을 보는 관음증을 만족시켜 주기도 한다. 짙어진 자동차 썬팅은 여름철 냉방에 도움도 되지만 점점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런 세상을 지워 버리는 현대인의 생존 기술 중 하나이기도 하다. (p.222; 1-8)

 주요 내용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라는 것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생각해볼 타이밍이다.


 건축이야말로 통섭적인 학문이 아닐까? 감성적,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면서도, 효율과 용적을 따져야 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이런 모든 조건을 만족해야 비로소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불릴 수 있고, 아직도 그런 건축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처사이다.

 스케일을 바꾸면 시선도 달라진다. 위에서 말했듯 건물 하나를 보고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느끼기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완벽한 곳이라고 느끼기는 덜 어렵다. 더 크게 보아 지구를 완벽하지 않은 행성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건물 미니어처를 생각하면 이와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스케일에 따라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준다. 휴먼 스케일과 조감도의 차이, 안과 밖의 차이, 대지와 공중의 차이. 모든 상황에 있어서 스케일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도 좀 더 완벽한 사람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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