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미래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
조영태 지음 / 북스톤
기성 세대들은 살기 힘들다는 젊은이들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으레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기 쉽다. 나 또한 그런 기성 세대들의 인식에 익숙해져서 그런 생각이 당연한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러한 선입견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정해진 미래'는 미래 한국의 다양한 면을 인구학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쉽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젊은이들 대부분이 무엇때문에 힘들다는지 알고 나면 세대 갈등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1995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평균 4.9명이 살았다. 그 후 평균 가족 수가 줄기 시작해 2010년에는 2.7명이 살았다. 15년 사이에 2.2명이 감소한 것이다. 특정 규모 아파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평수 아파트에서 비슷한 비율로 줄었다. 그러다 2005년 이후에는 큰 변화가 없어서 소형(60㎡ 이하)에는 2.1명, 중소형(60~85㎡)은 3.3명, 중대형(85~135㎡)에는 3.9명, 그리고 대형(135㎡ 이상)에는 6.9명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p.53; 14-20)
그 사이 서울시의 인구가 이와 똑같은 비율로 줄어든 것은 아니니, 한 가구의 가족 수가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구 수가 늘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서울시의 가구 수는 2000년 약 312만에서 2010년 약 350만 가구로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증가분의 상당수가 1~2인 가구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p.54; 2-7)
자, 여러분이 아파트 투자를 고려한다면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매력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1~2인 가구가 살기 적당한 작은 아파트를 사야 할까? 인구변화 추이를 보고 작은 아파트를 샀으니, 이 투자는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꾸 물어본다는 것은 답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맞다. 실패한다. 왜 그럴까?
첫째, 그동안 부동산 가격은 대형 아파트가 올려놓고 작은 평수가 따라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대형 아파트 가격이 무너지면 다른 평형 아파트도 같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형 아파트의 몰락과 함께 부동산 불패신화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단순히 가족이 적어진다는 사실만 보아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1~2인 가구는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일단 젊은이들은 집을 살 여건이 안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20~30대는 이전 세대의 그 연령대에 비해 구매력이 현저히 낮다. 이전 세대들이 20대 초중반에 경제활동을 시작했던 반면 현재의 20~30대는 구직난 때문에 30대가 되어야 경제활동을 시작하기 일쑤다. 이들이 10년 뒤 30~40대가 되어도 당연히 지금의 30~40대에 비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을 터이므로, 투자를 목적으로 아파트 구매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p.56; 8-20, p.57; 1-11)
아파트 투자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다. 소형 아파트의 가격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높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부동산 시장 자체가 흔들리기 쉽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층의 구직 및 생계 유지를 위한 어떤 답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이는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연령대를 위한 노동 시장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숙련도나 전문성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연령대의 노동시장은 진입적 성격이 강하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거나 시간제 근로인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이러한 미숙련 인력을 고용해 기업 내부에서 교육을 시켜가며 경력자로 키웠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에서도 업무를 가르쳐가며 키울 여력이 없어졌다. 그보다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숙련자 위주로 채용하는 바람에, 20대가 참여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규모가 다른 연령대의 노동시장에 비해 훨씬 작아졌다. (p.115; 10-18, p.116; 1-3)
여기부터는 청년의 삶이 왜 힘든가?에 대한 답변이다. 20대의 취업 전선은 다른 세대에 비해 더 고전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런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20대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지금의 10대인 저출산 세대의 인생은 지금의 20대보다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 더 심해질 것이다. 30대가 되면 부모 세대보다 월급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지금의 20대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그들보다 사실상 저출산 세대의 미래가 더 어둡다. (p.117; 16-20, p.118; 1-3)
'정해진 미래'라는 제목은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내포하고 있다. 세대가 갈수록 저출산과 고령화에 의한 생활고는 심해질 것이다.
인구학은 어느 특정 연령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따라가며 관찰한다. 이 사람들이 어떤 시기를 사느냐, 어떤 코호트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인구학에서는 어느 특정 연령보다는 그 즈음 같이 태어난 사람들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이를 '코호트'라 하는데, 일상적으로는 '세대'라는 개념과도 비슷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97년에는 외환위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그래도 대부분 졸업하면 직장을 가졌다. 그때 내 또래들의 기대는 '내가 마흔 정도에는 그래도 부장쯤은 돼 있겠지'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 윗 세대, 그리고 내가 속한 코호트가 그런 길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베이비부머 2세대들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신입직원들은 그런 기대를 할까? 일단 스펙을 쌓고 구직활동을 하느라 직장생활을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40세가 되어도 직장경력이 10년이 채 안 된다. 그러니 부장은 언감생심, 과장 정도밖에 하기 어렵다. 이것이 이를테면 각 세대가 겪는 경험의 차이다. 이처럼 코호트 사이의 변화를 추적하다 보면 변화의 방향이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미래에 어떤 현상이 가속화될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p.118; 12-18, p.119; 1-15)
청년층의 구직이 힘든 이유는 인구가 많은 베이비부머 1, 2세대와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왜 높은가? 노동조합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직이 고령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직원들이 나가지 않는다면 회사 규모를 계속 키우지 않는 한 신규직원을 뽑을 수 없다. 그러니 고참들만 많아지면서 연령구조가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간다.
인사관리 분야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예전에 어느 대기업에 인구학 강의를 갔는데, 고령화의 심각성에 관해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별반 감흥이 없었다. 아무래도 남의 얘기처럼 생각하는 듯하여 인사팀에 요청해 생산직을 제외한 관리사무직 임직원들의 연령분포를 뽑아달라고 했다. 자료를 보니 2013년 현재 5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였고, 대부분 임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비율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50세 이하 임직원의 대부분이 40대였던 것이다. 40대도 초반이 아니라 중후반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30대는 조금 있었지만 20대는 거의 없었다. 현재와 같은 비율로 입사하고 퇴사한다고 가정한다면, 10년 후 이 회사 임직원의 40%는 50대가 차지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50대면 아무리 못해도 부장, 이사급일텐데 그들의 연봉을 누가 주겠나. 기가 막힌 신제품을 내놓든, 제품 가격을 올리든 돈을 획기적으로 많이 벌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10년 안에 이들의 상당수를 내보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청중의 표정이 드디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원인 이상 당장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10년 후에 잘릴 가능성이 지금 우리 부장보다 더 높겠구나!'
지금도 경기가 좋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부장 직함도 달지 못하고 구조조정되는데, 이제는 경기가 개선되어도 고령화 때문에 구조적으로 밀려날 이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p.120; 15-21, p.121; 1-21, p.122; 1-3)
회사 입장에서도 노동안정화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고 노동유연화를 선택하기에는 빠른 회전율 때문에 사원들의 숙련도가 걱정된다. 우리나라에서의 미래가 전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기업들은 해외진출을 선택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값싼 노동력과 넓은 부지를 얻기에 최적이다. 해외진출한 기업들을 보면 국위 선양에 한 몫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한 편으로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잃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흔히 생각하듯 청년층과 노년층, 즉 2030대 5060의 갈등이 아니다. 인구학적으로 더 눈여겨보아야 할 세대갈등은 베이비부머 1세대와 베이비부머 2세대 간의 갈등이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1세대는 1955~64년생, 2세대는 1965~74년생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58년 개띠'와 '70년 개띠' 간의 대결이랄까.
이 두 세대는 인구 크기가 얼추 비슷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 중 베이비부머 1세대가 이제 막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은퇴와 관련해 노동시장에 만들어놓은 대표적인 작품이 '정년 연장'이다. 이들은 은퇴가 목전에 닥치자 고용을 안정화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은퇴연령을 60세로 늦췄다. 자신들의 노후를 그렇게 해서 조금이나마 안정시켜둔 것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은퇴는 해야 했다.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면 그 다음으로 2세대가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나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우리 2세대들은 어떤 대책을 세울까?
베이비부머 2세대는 1세대보다 인구가 더 많다. 그리고 이들은 공부도 더 많이 했다. 바야흐로 지금 한국사회의 주도권은 이들 2세대가 쥐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베이비부머 2세대라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지금은 기득권을 쥐고 있지만 경기가 어렵고, 자식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도 없다면?
은퇴를 아예 없애면 된다. 은퇴 없이 평생 일하는 신화를 만드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세대는 크기가 작아 힘이 없는데다 상대적으로 사회생활도 늦게 시작했으니 경험도 많지 않다. 2세대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국가도 좋을지 모른다. 이들이 한꺼번에 은퇴하면 국가가 이들에게 복지정책을 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러니 2세대가 은퇴하지 않는 게 국가로서도 나쁘지 않다. 2세대는 대부분 아직 40대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몇십 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 뒷세대들의 일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정치적 힘이 없으므로 2세대의 계획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
오히려 반발은 엉뚱한 데서 온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1세대들이 한 마디 한다. '뭐야, 왜 너희만 은퇴 안 하고 계속 있어? 너희나 우리나 나이차도 별로 안 나는데. 그럼 나도 돌아갈래.'
실제로 이런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실버취업을 해도 용역 등 급여가 높지 않은 단순노무직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베이비부머 1세대들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자산도 있어서 당장 생계가 급하지도 않다. 그러니 급여가 낮은 단순노무직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안정적인 자리,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 자신이 얼마 전까지 있었던 바로 그 자리다. 지금 그 자리에 누가 있는가 하면, 은퇴도 없애버리려 하는 2세대들이 차지하고 있다. 선배 교수들이 은퇴하고 난 다음 내가 70세까지 계속 교수로 있는 형국이다. (물론 교수는 그러기 어렵다. 대학이 위태로우므로.) 2세대의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이 두 세대 간의 격돌이 본격화될 것이다.
상황은 베이비부머 2세대에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아직 현역이고 현재 우리 사회 최대의 기득권층이므로. 그렇게 되면 1세대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국면에서 애꿎게 청년들의 취업시장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30~50대는 업무와 관련된 기술과 지식, 경험이 절정에 이르기 때문에 까다롭고 전문적인 일을 하고, 20대 신규취업자들은 경력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맡곤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세대가 취업전선에서 충돌할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50대 이후 은퇴를 맞이한 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을 아예 하지 않고 노느니 뭐라도 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건강 면에서 낫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을 하고자 한다.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가기가 여의치 않으면 아쉬운 대로 취업이 쉬운 일자리라도 찾으려한다. 바로 20대에게 그나마 남아 있는 그 자리다. 2014년부터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돼 향후 20여년간 매년 70~90만 명이 은퇴자가 될 것이다. 청년들의 취업문제를 생각할 때 이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청년층이 규모가 작고 힘이 없다 해도, 상황이 이쯤 되면 고령층과의 세대갈등이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인구가 은퇴를 미루면 취업시장에서 부딪칠 것이고, 은퇴해서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그 엄청난 부양 부담을 젊은이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됐든 충돌은 예고돼 있다. (p.158; 7-21, p.159, p.160, p.161)
베이비부머 세대와 2030 세대의 충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젊은 층에게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권력을 양분하는 두 정당이 모두 보수당이 되는 것이므로. 2030은 인구 크기가 작아서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미래 어느 시점에 젊은 층이 주류가 되리라 전망하기도 힘들다. 10여년 후에 2030이 될 현재의 10대들은 40만 명밖에 안 되는데, 그들이 아무리 소리쳐봐야 90~100만 명씩 태어나던 1, 2세대들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2030에게만 1인 2표를 준다면 모를까, 정치공학에서는 100만 명을 놔두고 40만 명과 연대할 이유가 없다. (p.163; 10-18)
2030 세대가 더욱 투표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 아닐까... 베이비부머 세대들과 싸우는 것은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
저자는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으면서도, 미래 한국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변화도 함께 꾀하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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