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강주헌 옮김 / 김영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도서 1위 도서로 유명한 『총, 균, 쇠』를 집필한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다. 사실 그의 생각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총, 균, 쇠』를 읽는 것이 더 맞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그 책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알게 될 거다. (무척이나 두껍다. 2013년판 기준 760쪽...!)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을 간단하게 요약해준다. Pre-『총, 균, 쇠』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빈부 격차의 차이, 사회적 또는 세계적 문제같이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널리 읽기에 충분하도록 쉽게 쓰였고, 저자 나름의 압축적인 해결책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책을 더 좋아하는 내가 진중문고 독서감상문 경연대회에서 이 책의 독서감상문을 작성했었는데, 이 쯤이면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충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한다.
온대 국가에 비해 열대 국가가 가난한 데는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농업 생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열악한 공중 보건입니다. 농업 생산성부터 먼저 살펴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열대 지역이 온대 지역보다 곡물 수확량이 높아야 합니다. … 애초의 기대와 달리 열대 지역의 농업 생산성이 낮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토양의 비옥도가 낮고 박토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와 미국 등 온대 지역의 농지는 심토이고 비옥한 편입니다. 빙하가 미국과 이탈리아의 넓은 지역을 반복해 오르내린 덕분이지요. … 열대의 토양이 지닌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일까요? 이탈리아와 미국의 온대림에서 산책하면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이 자주 눈에 띕니다. 달리 말하면, 땅에 떨어져 천천히 썩어가며 토양에 오랫동안 영양분을 방출하는 유기물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열대지역에서는 땅에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 유기물이 열대의 높은 기온 때문에, 또 미생물과 작은 동물들에 의해 신속하게 분해됩니다. 게다가 열대의 잦은 비 때문에도 영양분이 토양에 스며들지 못하고 강으로, 다시 바다로 씻겨 내려갑니다. 이처럼 두 가지 이유에서 열대지역의 토양은 박토이고 비옥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대지역의 농업 생산성이 낮은 또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온대 지역보다 열대 지역에 동식물의 종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브라질에는 미국의 조류 관찰자를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조류도 많지만, 곡물을 감염시켜 병들게 하여 결국에는 생산량을 크게 떨어뜨리는 병원균과 벌레와 곰팡이의 종류도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p.27; 17-21, p.28; 17-21, p.29; 7-22)
지금껏 인용했던 글 중에 가장 많은 내용을 인용했다. 누구나 위도에 따른 빈국과 부국의 차이를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특히 예부터 지금까지 부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온대 지역에 속한다. 이 부분은 그 이유를 말끔히 설명하고 있다. 지역의 기온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냉대 기후의 그것을 제외하면 죽음으로 연관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배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처음 이러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 볼만한 생각인 것 같다. 위의 인용구는 낮은 농업 생산성에 대한 내용만 정리하였는데, 그에 대한 이유를 토양의 비옥도와 동식물 종의 다양성으로 정리하고 있다. 토양의 비옥도를 강우량과 유기물 총량에 비례한다고 행여나 오인할까 열대 지역의 상황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특히 동식물의 종이 열대 지역에서 훨씬 다양하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곤충의 종 수(알려진 곤충의 종 수는 80만 여 종이고, 최대 300만 여 종까지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만 따져도 동물 총 종 수의 75%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하다. 우리가 해결책을 몰라서 생기는 각종 생물들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질병들을 해결한다면 지구의 구원자라는 명칭으로 부르더라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열대지역의 질병들은 한 번 걸리더라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재발성 질병입니다. 그 질병에 언제라도 다시 걸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인에게 가장 친숙한 재발성 열대 질병은 말라리아일 것입니다. 열대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열대기후권 사람들을 괴롭히는 기생충과 원생동물 등 질병을 옮기는 병원균에 대한 소문을 들었거나, 그 질병에 직접 걸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p.31; 9-16)
책에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열대지역의 질병들이 재발성 질병(recurrent disease)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생물 종의 다양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Plasmodium은 원생생물계에 포함된 생물이다.(원생생물계는 진핵생물역에서 다른 계로 분류하기 어려운, 특징의 공통성을 알기 어려운 생물을 모아둔 집합이다. 따라서 어떤 공통성을 가진 집합이 아니라 균계, 식물계, 동물계의 합집합의 여집합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질병에 있어서도 열대 지역에서는 원생생물계에 속하는 생물들이 일으키는 질병이 유독 많은 편이다. 열대 지역에서 창궐하는 바이러스 또한 생물, 무생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개체이다.
장황한 열대림은 이러한 열대의 다양한 생물에 접근하는 것을 크게 방해하는 요소이다. 열대림을 파괴하지 않고 생물들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다.
열악한 공중 보건은 경제적 차이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책에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기대수명과 높은 사망률은 생산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어린 나이에 사망할 확률이 높은 까닭에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은 일인당 평균소득이 낮아지게끔 만들고, 자식의 양육을 위한 여성의 가사 활동은 노동력의 증가를 크게 제한하는 요소이다.
가난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지리적 요인은 육지에 둘러싸인 입지 조건입니다. … 세계에는 바다와 전혀 접하지 않은 데다 선박이 항해할 수 있는 강도 없는 국가가 많으며, 그런 국가의 상황은 무척 다릅니다. (p.37; 1-2, 13-15)
내륙이라는 입지 조건은 국가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조건 중 하나이다. 해상 운송 수단은 최저 운송비를 자랑하는 수송의 꽃이고, 해군이 없다는 것은 국방력의 확대와 작전 지역의 제한 요인이다. 이는 유럽의 내륙국들이나 남미의 내륙국들(파라과이, 볼리비아)의 지갑 사정을 해안을 접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부유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거꾸로 가난한 경향을 띱니다. 이런 이유에서 경제학들이 '천연자원의 저주(curse of natural resources)'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 실제로 천연자원은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경향을 띱니다. 이런 차이가 내란과 분리 독립 운동으로 이어집니다. … 천연자원은 부패와 비리를 조장하기 때문에도 저주로 여겨집니다. … 천연자원을 개발하면 막대한 돈이 흘러들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기 마련입니다. 이런 현상도 천연자원의 저주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값비싼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가가 자연스레 상승합니다. 하지만 고임금과 고물가의 기조가 계속되면 경제를 지탱하는 다른 산업 분야들이 천연자원 분야와 경쟁해서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p.39; 11-13, 16-18, p.40; 1-2, 12-18)
이 내용까지가 지리적 요인에 의한 국부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45쪽까지의 비교적 짧은 내용이지만, 작가의 견해 대부분을 담고 있어서 만약 이 책을 읽을 여유가 별로 없다고 하면 이 부분까지만 읽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천연자원의 저주는 우리가 흔히들 빈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예시들을 포함한다. 나이지리아, 앙골라, 콩고, 시에라리온, 볼리비아...
한 분야에 있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더라도 순위권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의 오차 없는 조합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 있어 대한민국은 그 낮은 확률을 뚫고 10위권에 오른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문단에서 우리는 나라 탓을 하기보다 더 살기 좋은 국가 건설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 바꿔나가야함을 알 수 있다.
이 이후의 내용은 중국의 이야기와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내가 느끼기에는 중국의 이야기는 참고해 볼만한 이야기이고, 개인의 이야기는 자기계발서 느낌의 서술이다. 국부를 결정하는 제도적 요인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로 여겨져 생략했다.
이 책은 지식인들이 읽기보다는,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 정도 내용은 알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우습게 쳐다볼 수는 없을 것 같다.(너무 생각을 막 적어댄 글인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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